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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실리 칸딘스키
Wassily Kandinsky [1866-1944]
바실리 칸딘스키는 러시아 모스크바 출신으로, 그의 배경에는 독일 귀족과 타타르계 혈통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어릴 때부터 그는 민속 예술과 문화에 큰 관심을 보였으며, 특히 Vologda 지역의 민속 연구 그룹 활동을 통해 지역의 화려한 색감과 예술적 전통을 경험했습니다. 이 경험은 그의 초기 작품들에 큰 영향을 주었으며, 이후 색과 형태에 대한 그의 깊은 관심과 탐구의 시작이 되었습니다.
30세에 이르러 칸딘스키는 안정적인 직업이었던 교육법과 경제학을 포기하고 독일 뮌헨의 예술 아카데미에 입학하기 위해 모스크바를 떠났습니다. 이 결정은 당시 그의 삶을 완전히 바꾸는 선택이었으며, 독학으로 예술을 공부하면서 모네의 작품에
깊은 감명을 받은 일화가 유명합니다. 그는 모네의 작품에 대해 “그 그림이 나를 완전히 사로잡았을 뿐만 아니라, 내 기억에 절대적인 영감을 불어넣었다”며 그 감동을 표현했습니다.
1902년, 그는 학생이었던 가브리엘 뮌터를 남부 알프스의 그림 수업에 초대했고, 그들의 관계는 점차 개인적인 것으로 발전했습니다. 이 시기에 칸딘스키는 미술 평론가로서도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1906년부터 1908년까지 유럽을 여행하며 예술적 영감을 넓히던 그는 바이에른의 무르나우에 정착했고, 이곳에서 본격적인 예술적 성취를 이루어나갔습니다. 칸딘스키는 또한 러시아의 상징주의 단체인 블루로즈에 참여하며 예술적 교류와 협력을 이어갔습니다.
1918년부터 1921년까지 러시아로 돌아온 칸딘스키는 문화 정책과 예술 교육 개혁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으며, 모스크바에 예술 문화 연구소 설립을 도왔습니다. 이 시기에 그는 형태와 색채 분석에 기초한 예술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어 예술적 기초를 가르쳤지만, 급진적인 동료들에게 부르주아적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습니다. 결국 1921년에 독일 바우하우스의 창립자인 발터 그로피우스의 초청으로 독일로 이주해 예술 활동을 이어갔고, 바우하우스가 나치에 의해 강제 폐쇄될 때까지 이곳에서 지냈습니다. 이후 프랑스로 건너가 1939년 프랑스 국적을 취득했고, 1944년 파리 근교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칸딘스키의 대표작 중 하나인 구성 VIII는 1923년에 완성된 작품으로, 추상 표현주의와 기하학적 추상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힙니다. 다양한 기하학적 도형, 곡선, 직선, 원 등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이 작품에서 그는 색채와 형체를 통해 감정과 리듬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려 했습니다. 마치 음악의 리듬처럼 색과 형태가 얽히며 시각적으로 “소리”를 느끼게 하려는 의도를 담았고, 무질서해 보이지만 그 안에 조화와 균형을 추구하는 독특한 구성을 보여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