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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세잔
Paul Cézanne ,France [1836-1906]
부유한 은행가의 사생아로 태어난 폴 세잔은 어린 시절부터 화가가 되기를 꿈꿨으나, 고압적인 그의 아버지는 이러한 그의 꿈을 완강하게 반대했다. 아버지에 대한 두려움과 사생아라는 사실에서 오는 불안감이 세잔을 평생 괴롭혔던 것으로 보인다. 스물두 살에, 세잔은 파리에 6개월 동안 머물면서 미술 공부를 했고, 다른 화가들과도 교류했다. 이 기간 동안에 그는 심한 우울증을 겪었는데, 자괴감에 빠져 자신의 그림들을 부숴버리곤 했다. 그는 고향인 엑상프로방스로 돌아갔으나, 화가로서 성공할 것을 다짐하며 1862년에 다시 파리로 향했다. 절친한 친구였던 작가 에밀 졸라와 함께 그는 정치적으로 활발히 활동했으며, 자신을 혁명론자로 선언했다.
이러한 태도에도 불구하고, 세잔은 파리 미술계의 최상류층에 들어가기 위해 필사적이었다. 파리 살롱전에서 그의 작품들이 거절당했을 때, 세잔은 다시 한 번 우울증에 빠졌지만 이번에는 견뎌냈다. 살롱전에서 작품을 거절당한 미술가들을 위한 대안으로, 1863년에 '낙선전'이 열렸다. 세잔은 이 전시회에서 다른 '불합격자들'인 에두아르 마네, 카미유 피사로, 앙리 팡탱 라투르 등과 함께 작품을 전시했다. 20년 후인 1882년에, 그의 작품은 처음으로 살롱전에 통과되었다.
1886년에 아버지가 사망하자 세잔은 재산을 상속받았다. 이 시기에 그의 작품은 중요 미술 수집가들에 의해 선호되었으나, 이러한 성공에도 불구하고 세잔은 자신이 실패했다는 느낌을 떨치지 못했다. 세잔은 그림을 그릴 때, 장면에 감정이 이입되는 화가였기에, 그의 삶에 일어나는 변화들과 함께 그의 미술 양식도 서서히 변해갔다. 1860년대 후반에 그는 대체로 서투르고 어쩌면 화난 것처럼, 캔버스에 물감을 겹겹이 덧칠하는 방식을 사용하고 있었다. 이러한 양식은 1866년에 그의 아버지를 그린 초상화에서 더욱 두드러졌다. 하지만 그는 곧 <자드부팡의 길>(1871경)과 같은 감각적인 그림들을 제작했다.
Mont Sainte-Victoire (ca. 1902–6)
세잔은 1852년에 같은 학교를 다니던 에밀 졸라를 처음으로 만났다. 그들은 곧 절친한 친구가 되었고, 서로를 영웅처럼 숭배했던 것으로 보인다. 외관상 졸라는 세잔의 미술을 경외했고, 세잔은 졸라의 글을 경외했다. 졸라 역시 아마추어 화가로, 두 소년은 엑상프로방스의 시골을 산책하며 스케치하는 등 대부분의 자유 시간을 함께 보냈다. 세잔은 졸라와 함께 그림을 그리던 시절을 항상 잊지 않았다. 그의 많은 작품들 속에는 함께 그림을 그리는 인물이 나타나는데, 졸라를 모델로 한 것이다.
졸라의 격려 덕분에, 세잔은 엑상프로방스를 떠나 파리로 갈 수 있었다. 졸라의 아버지가 죽은 후에 졸라와 그의 어머니는 파리로 이사했다. 세잔의 아버지가 완강하게 반대하는데도 불구하고, 졸라는 세잔에게 함께 파리로 가서 집중적으로 그림을 그리자고 설득했다. 세잔과 졸라는 30년 이상 친구로 지냈다. 유명한 소설가로 명성을 얻고 있던 졸라는 1886년에 『작품』을 출판한다. 이 작품의 주인공인 클로드 랑티에는 늘 불안해하고 성적으로 자신이 없으며, 실패한 화가로, 이후 자살을 한다. 랑티에는 졸라가 알고 있던 많은 화가들의 특성을 섞어 놓은 인물로 여겨지지만, 세잔은 랑티에가 자신을 풍자한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세잔은 수십 년 동안 졸라에게 털어놓은 비밀들이 우롱당한 것처럼 느껴졌다. 이 사건으로, 한때 아름다웠던 둘의 우정은 끝나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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